다시 한번 생각나는 프리다칼로 사진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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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생각나는 프리다칼로 사진전 후기
멕시코하면 유명한 인물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프리다 칼로 라고 합니다.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작가로 멕시코의 전통문화를 결합하여 원시적이면서도 화려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3월 26일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프리다칼로 사진전을 하고 있는데요. 예약한지 꾀 되었지만 거의 끝날때쯤 다 되어서 오늘 드디어 가보게 되었습니다. 26일까지니 포스팅 하는 오늘을 기준으로 이번주까지 하는거네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아이들 하고 같이 가서 보고온 프리다칼로 사진전 후기를 올려 보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이 아닌 사진위주의 사진전이였구요. 작품도 볼수 있었지만 Replica 작품이였습니다. 하짐나 사진과 프리다칼로의 일대기를 볼수 있었던거 같아서 꾀 의미 있는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티켓팅 하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에는 그녀의 일대기에 대해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한번 쭉 훓어 보면 사진을 보는데 꾀 많은 도움이 되는거 같아요.
그래도 프리다칼로 위키 페이지에서 조금더 보고 가시면 더 좋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전시관 내부 사진은 자유롭게 찍을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DSLR 등의 카메라를 사용할수는 없고 스마트폰으로만 찍어야 한다고 하네요. 요즘은 디카나 스마트폰이나 큰 차이 없는거 같은데 카메라로는 못 찍게 하더라구요. 그래도 사진은 자유롭게 찍을수 있었습니다.
내부 전시관중에서 누드존이 있는데 프리다칼로의 누드사진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서만 사진을 못 찍도록 되어 있어요. 그외에는 자유롭게 찍을수 있었습니다.
프리다 칼로 어렸을때 사진과 함께 자화상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짐나 프리다 칼로 6살에 척추성 소아마비에 걸렸었다고 해요. 약 9개월동안 병원에서 누워만 있었는데 후유중이 남아서 오른쪽 다리가 조금 가늘었다고 해요. 그래도 재활 훈련 때문에 자전거, 롤러, 수영, 복싱등을 두루 섭렵하면서 약간 겉보기에는 천방지축처럼 자랐다고 해요. 하지만 내면은 또래보다 성숙하고 우울한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의 초상화 그림이 있는데요. 프리다칼로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림을 보면 얼굴을 완성 못한 인물들이 보이는데요. 이 그림은 프리다칼로가 죽기직전에 병원에서 그렸던 작품이라고 해요. 마지막 까지 이 그림을 완성하고 싶어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생전 마지막 작품은 아니에요. 마지막 작품은 따로 있더라구요.
그리고 프리다칼로 아버지 초상화도 많이 그린거 같아요. 아버지를 굉장히 좋아 했던거 같습니다. 프리다 칼로 아버지는 아들이 없었던 대신 그시대에 여성들이 배우지 못했던것들을 아들처럼 모두 가르쳐 주고 싶어 했던거 같아요. 본 사진전에도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인 기예르모 칼로의 사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도 사진작가 였었나봐요.
프리다칼로가 멕시코 독일계 학교에서 초등과정을 마친후에 멕시코 국립학교에 들어 갔었는데 입학시험에 합격했을때 아머지인 기예르모 칼로가 엄청 좋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리다칼로가 입학했을때가 멕시코혁명이후 처음여학생들의 입학이 허용되었던 때라고 하네요. 의과 대학에 진학을 할수 있는 5년과정에 등록을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화가가 아닌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프리다 칼로가 가입한 동아리가 모든것을 냉소적으로 바로보는 "카추차스" 였는데요. 프리다칼로는 이 동아리가 마음에 들었던거 같아요. 남학생 7명과 프리다를 포함한 여학생 2명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는데 직접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낭만적 사회주의를 선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머리도 좋아서 학교내 개혁을 선동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돌발행동으로 사고를 많이 쳤었던거 같아요. 하지만 프리다 칼로는 그만큼 공부도 잘했다고 합니다. 그것때문인지 퇴학을 봉보 받았는데 교육부 장관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서 복학을 할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책상을 벅차고 학교를 떠났다고 하네요. 결국 의사는 못되었습니다.
사진전에 멕시코혁명 관련된 사진들이 초반에 많이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멕시코혁명 자체가 프리다 칼로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던거 같아요. 프리다 카로는 멕시코 혁명이 있었던 1910년 3년전인 1907년에 태어 났다고 합니다. 고작 3살의 나이였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문화혁명을 위해 정치적 혁명이 막을 내리려할때쯤 시작된 다른 혁명에 참여 했다고 합니다.
전시장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이 새로운 혁명 이후에 멕시코에, 프리다 칼로는 자유롭고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자랐으며 그림에서 열정적인 언어를 찾아 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후에 나중에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혁명때인 2010년에 태어났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혁명의 딸이라고 했나 봅니다. 어쨌든 프리다 칼로는 현대 멕시코 딸로서의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고 해요.
그래서 초반에 멕시모 혁명과 관련된 사진들이 많이 전시가 되어 있었던거 같아요. 그리고 그 이전의 멕시코 황제였던 막시밀리아노 황제의 사진도 보입니다. 총살되어 있을때 입고 있었던 옷의 사진과 방부처리된 황제의 사진등이 있네요. 전시를 보면서 멕시코 역사를 한번 훓어 보게 되는 느낌도 들었어요.
벽면에 "형명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되찾았고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압축하여 재전달하여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라고 문제의 프리다칼로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글귀가 적혀 있네요. 처음에 사진들을 보면서 이 사진들이 프리다칼로와 무슨관계가 있었던거지 많이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ㅎㅎ 꾀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어서...
뒤로 가면 이제 프리다칼로 사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프리다칼로 사진을 보면 특징인 갈메가 눈섭과 몇몇 사진들과 자화상에서 보이는 옅은 콧수염이 얼핏 보면 굉장히 양성적인 느낌도 많이 드는거 같아요. 실제로 짙은 갈매기 눈썹, 강렬한 눈빛, 강인한 엉덩이턱, 콧수염의 흔적 아래 육감적인 붉은 입술 등이 굉장히 독특하고 아름다웠어서 꾀 많은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 이외에 사귀었던 사람들도 꾀 많았던거 같아요.
그리고 꾀 많은 그림에서 남편을 볼수가 있는데요. 프리다칼로가 했던말 중에 "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남편을 굉장히 사랑을 했지만 디에고는 꾀 바람을 핑면서 프리다를 고생시킨것 같아요. 그런게 그림에서 꾀 많이 보이는거 같습니다.
전시 중간에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이용한 미디어 아트도 있습니다. 꾀 긴 영상이 재생이 되는데요. 다양한 프리다 카롤의 작품을 주제별로 볼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하고 같이 가시는 분들은 몇몇 작품에서 아이들이 싫어 할수 있는 그림들이 나올수 있으니 참고 하셔서 보시는게 좋을거 같아요. 특히 고통을 담고 있다는 부분에서는 그런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는거 같아요.
프리다칼로는 남편과 같이 있는 그림도 꾀 많이 그린거 같아요. 사진에서도 남편과 같이 찍혀 있는 사진이 많이 담겨져 있는거 같습니다. 프리다 칼로의 친한 사진작가들이 몇몇 있었던거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많이 보이는 사진 작가는 2명정도 였던거 같아요.
인터넷에 찾아 보면 국립학교에 다닐때 프리다 칼로는 남편인 디에고를 처음 봤다고 합니다. 벽화를 그릴때 프리다가 가서 말을 걸었다고 해요. 아래 글은 그때 당시를 기억하는 디에고의 얘기라고 합니다.
그의 태도는 얼핏 봐도 남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위엄과 자신감이 있었고, 눈동자는 야릇한 빛을 뿜었다. 그는 아직 어린아이처럼 귀여웠으나, 어딘가 모르게 꽤 성숙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당신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면 방해가 되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천만에, 꼬마 아가씨. 오히려 영광이지”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에게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질투심에 불탄 루페는 여자애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루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더 화가 난 루페는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 여자아이를 쏘아보았다. 여자아이는 표정만 굳어질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루페가 노려보자 여자아이 역시 말없이 루페를 노려보았다. 루페는 무척이나 놀란 눈치였고 오랫동안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지만, 이윽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저 애 좀 봐! 저렇게 어린애가 자기보다 크고 어른인 여자를 겁내지 않잖아. 난 왠지 저 애가 맘에 들어.”[15]
여자아이는 세 시간쯤 있다가 “안녕!”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기둥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이 그였고, 그의 이름이 프리다 칼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가 나의 아내가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나이차가 꾀 많이 났었던거 같은데 디에고가 봤을때는 나이에 비해서 꾀 성숙한 분위기를 느꼈었던거 같습니다. 이때 이후에 디에고가 프리다칼로의 이름을 안건 1년후라고 하네요.
다른 사진에서 봤을때에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사진 전혀 문제 없어 보이는 부부로 보이네요. 왜 멋진 프리다 칼로를 두고 바람을 폈을까요? 반대로 프리다 칼로는 마지막 까지 디에고를 잊지 못했던건지 많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래 우측 사진은 보그 잡지에 보고 되었던 프리다 칼로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정말 개성있는 외모였던거 같아요.
실제로 그녀의 꾀 다양한 사진들을 이번 전시에 볼수가 있습니다. 프리다 칼로 작가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굼하셨던 분들은 이번 전시를 꼭 봤었으면 좋았을거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시 대부분 프리다와 그녀의 남편과의 얘기도 많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사진도 굉장히 많이 있구요. 어쨌든 생전에는 프리다칼로도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분 모두 죽은후에는 그 반대가 된거 같아요. 디에고는 프리다칼로의 남편으로 더 많이 알려지고 프리다 칼로가 더 많이 유명해진거 같네요.
아래 사진은 1890년대 사진들이라는거 같아요. 이때는 프리다의 삶에 근본이 되는 사건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적 여정까지 볼수가 있다고 합니다. 1934년 디에고는 프리다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불륜을 저지른 사건을 시작으로 이혼과 같은 큰 일들이 포함이 되어 있다고 하네요.
사진을 모두 설명을 할수는 없을거 같지만 사진마다 관련된 프리다 칼로 작품이 한점씩 들어가 있는거 같아요.
그리고 그녀의 작품중 3분 1을 차지하는 자화상도 정말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이 자화상들은 진한 갈메기 눈썹과 옅은 콧수염자국등을 볼수가 있어요. 그리고 작품들중에서 애완동물들과 함께 찍은것도 많이 보이네요. 그리고 디에고에 대한 애착을 볼수 있는 자화상도 있습니다. 이 그림은 꾀 유명한 그림인거 같은데 다소 보기에 무서운 느낌도 들고 슬퍼 보이기도 하네요.
뭐 결국에는 디에고는 이혼한지 1년후에 다시 프리다와 재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는 날까지는 계속 그녀 옆에 있어 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디에고의 마지막 아내가 프리다 인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프리다가 떠난지 1년후인가 다시 재혼을 했다고 해요 ^^;;
프리다 칼로는 인생에 있어서 그림은 정말 중요했던 부분인거 같아요. 말로 못했던 부분들도 그림으로 많이 표현을 했던거 같고, 아래 문구가 맞는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림이 내 인생을 완성했어 "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행했던 인생 같기도 하면서, 그림덕분에 멋진 인생 였을거 같기도 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1925년 9월 17일에 버스와 전차의 충돌로 인해서 많이 다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크게 다쳤는지 그때 자궁도 같이 다쳐서 결국에는 3번의 유산도 겪게 되고 이로 인해서 죽을때까지 꾀 많은 수술을 겪었어야 했는데 이로 인해서 생각보다 짧은 생을 살다가 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때 프리다 칼로가 병원에 입원 했을때 했던 철제 코르셋 깁스도 작품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녀가 병원에 누워서 직접 그려넣었다고 해요.
그래서 사진중에서 병원에서 찍은 사진들도 꾀 포함이 되어 있네요.
그리고 보다가 보니 처음에 보았던 가족 초상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 지네요. 결국에는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프리다 칼로는 이 그림은 정말 꼭 완성을 하고자 굉장히 많이 노력 했었다고 해요. 저렇게 누워서 그림을 그리면서 말이죠.
그리고 프리다칼로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도 이번 전시에서 볼수가 있었습니다. 왠지 슬펐던 사진.
그래도 1940년대에는 프리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디에고와 재혼하며 그래도 행복하게 지냈었다고 합니다. 하짐나 여러번의 큰 수술과 긴 입원 기간 그리고 지속적인 신체적 고통으로 점점 건강이 악화 되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아래 디에고와 프리다의 두번째 결혼 사진은 조금 애뜻하네요.
마지막 나오기 전에 프리다의 마지막 작품인 수박 그림이 있었는데 그건 찍지를 않았네요. 모든 전시가 그렇듯이 끝나고 기념품을 구입할수 있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엽서부터 그림, 쿠션, 컵, 귀걸이나 목걸이 같은 악세사리, 볼펜 등등 다양한 상품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오다가 포토존을 볼수가 있었어요. 약간 작업실 느낌으로 꾸며 놓은거 같더라구요.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도 봀 ㅜ있구요. 여기에서 기념 사진 하나 잘 찍어 놓아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오늘 다녀온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하고 있는 프리다 칼로 사진전 후기 였습니다. 프리다 칼로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도 한번 가보시느걸 추천해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포스팅 하는 날짜를 기준으로는 이틀 밖에 않 남았네요 ^^ 그래도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다녀와 보시길 바래요 ^^ 아이들 하고 같이 가도 됩니다. ~